Life Guide
Today's Intuition - Day 1. 과정의 힘(The power of the process) 본문
"과정에만 집중하기는 인생이 너무 짧다"
한 유튜브 댓글에서 본 이 문장이 며칠째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AI 시대, 모든 것이 빨라지는 세상에서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 시대착오적 발상일까?
그런데 200년 전, 조선의 대학자 다산 정약용은 우리에 이런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제자 황상이 자신을 "둔하고, 막혔으며, 미욱하다"고 자책했을 때, 다산은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공부하는 자들이 갖고 있는 병통을 너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구나. 둔하지만 파고드는 사람은 식견이 넓어지고, 막혔지만 잘 뚫는 사람은 흐름이 거세어지며, 미욱하지만 잘 닦는 사람은 빛이 난다."
그 방법이 무엇이냐? 근면함과 꾸준함이다.(정확히는 한자어로 穿鑿 이다.)
※ 천착(穿鑿) : 한자어 둘다 뚫는다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꾸준함과 근면함으로 옮겼다.
근면과 꾸준함이라는 이름의 과정
다산이 말한 '근면과 꾸준함'은 지루하고 비효율적인 과정의 연속이 아니다. 그것은 과정을 신뢰하고, 축적의 힘을 믿으며, 자신만의 속도로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빠른 기억력은 공부를 소홀히 하게 만들고, 뛰어난 문재는 허황한 곳으로 흐르게 하며, 빠른 이해력은 문장을 거칠게 만든다고 했다. 반면 '둔함'은 견고함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속도다. 폭주기관차에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내 두 발로 한 걸음씩 내딛는 것.
AI 시대의 역설
아이러니하게도, AI가 모든 것을 빠르게 해주는 시대에 이 '근면과 꾸준함의 철학'이 더욱 빛을 발한다.
과정을 깊이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 AI를 사용했을 때는 상상 이상의 폭발적인 시너지가 나온다.
기초가 탄탄한 사람은 AI에게 정확한 질문을 던질 줄 안다. 결과물을 제대로 판단하고 수정할 줄 안다. AI의 한계를 알고, 그 빈 공간을 자신의 경험으로 채울 줄 안다.
반면 과정을 무시하고 AI의 빠른 결과물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검증도 없이 그대로 사용한다. 이건 마치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스스로 점검할 능력이 없는 것과 다름없다. 내비게이션 없이는 길을 찾을 수 없게 된 요즘 대부분의 운전자들처럼, 도구 없이는 사고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든다.
ChatGPT가 시를 쓸 수 있지만, 그 시가 누군가의 가슴을 울리려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풍부한 경험과 감성이 필요하다. 도구는 도구일 뿐,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또다른 차원이고 여전히 과정을 아는 인간의 몫이다.
근면과 꾸준함의 마법
과정의 진짜 마법은 근면과 꾸준함에 있다.
- 둔하지만 파고들면 식견이 넓어진다
- 막혔지만 뚫으면 흐름이 거세어진다
- 미욱하지만 닦으면 빛이 난다
처음엔 상대적으로 느려 보인다. 남들이 AI 도구로 10분 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것을 나는 며칠에 걸쳐 고민한다. 하지만 그 고민의 시간이 쌓이고 꾸준하게 반복되면, 나중에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속도와 깊이를 AI 활용면에서도 갖게 된다.
한국 사회의 조급함에 맞서는 용기
어떤 유투브 쇼츠의 댓글에 "탄탄하게만 하다가는 한국에서는 욕먹고 도태된다" 라는 내용도 보였는데, 이건 우리 사회의 깊은 사회적 병리 현상이 담겨있음을 잘 보여준다. 반면 앞서 다산의 제자 황상을 보라. 그는 자신의 '둔함'을 인정하고 근면과 꾸준함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75세에 이르러서도 스승의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길 만큼 깊은 학식을 쌓았다.
세상이 빨라진다고 해서 우리도 반드시 그 속도에 맞춰야 할까?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들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성을 찾을 줄 아는 현명함이다. 여기에 다산이 말한 것처럼 "마음가짐을 확고히 가지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결과를 이끌어 내는 진정한 속도란
결국 진정한 속도란 내가 오롯이 그 속도를 통제할 수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폭주기관차에 올라타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앞서간다고 말하는 것과, 내 두 발을 스스로 컨트롤 해가며 꾸준히 걷는 것 중 어느 쪽이 진짜 '내 속도'인가? 폭주하는 기관차에서는 내릴 수도 멈출수도 없지만 내가 걸어서 도달한 그곳에서는, 모든 풍경이 언제나 빛나는 감동처럼 나를 반긴다.
과정을 즐기며 인내할줄 아는 거북이들이 결국 토끼를 이긴다.